2대째 해군가족으로써 천안함 희생장병을 애도하며..

삼성인 'Talk Talk' 2010/04/30 15:36

10시 묵념시간을 보내면서, 순간 울컥해서 포스팅 합니다.
우선. 왜 죽는지, 원인도 이유도 모른채 죽어간 불쌍한 사병들을 애도합니다. ㅜㅡ

사고 관련 많은 의혹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나쁜 세력들이 많은것 같지만, 그것은 오늘만은 잊어야겠습니다. 

중/고딩 시절 머리가 굵어가면서 선장이라 집을 자주 비우시는 아버지와 트러블이 많았습니다.
늘 화내고 소리지르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너무 미웠고, 아버지랑 같이 살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자 하고 아버지와 같은 해군에 지원했습니다.
전공이 전자/컴퓨터공학이라 전산병, 행정병, 통신병 등으로 빠질수도 있었지만 궂이 배타는 직종을 선택했습니다. 

배타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배가 부두에서 떠나가고 접안할때 마다 전쟁이었고, 부두에 접안할때 0.5초 한눈 팔았다는 이유로 몇일밤낮 시달렸고 제 실수로 배 측면에 기스가 났을때는 한동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요.
함포훈련 할때는 생전 처음듣는 너무나 큰 소리에도 절대 손으로 귀를 막지 못하게 했고(양손이 자유로워야 하니) 일주일간 머릿속이 멍멍해질 정도였습니다.

지하2층 침실(쇠사슬로 엮어만든 좁아터진 3층침대)에서 함포까지 전투복장 갖추고 1분30초만에 위치하는 훈련을 받으면서 이건 전세계 어떤 해군이라도 불가능할거라 혼자 궁시렁 거리며 훈련도중 목이 안쉬었다는 이유로 또 새벽까지 시달려야 했었습니다.

배가 부두에서 수리를 하는 도중에도 아침 저녁으로 비상훈련을 해야했고, 고참의 트레이닝복을 가져다 주다가 (배에는 늘 널려있는) 기름이 묻어서 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맞아야 했던..
한배를 탄 이상 말단 사병 한명의 실수가 전원의 생명과도 이어질 수 있다는 명목하에 매일 매일 정말 힘들게 시달렸습니다.

죽은 장병들도 군생활이 아무리 편해졌다하나 분명 저와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군생활을 했을 겁니다.

당시에도 TV를 트니 전방에 있는 육군 모 부대는 고참을 '선배님'이라 부르고 내무실(도 신기했고) 체육대회, 단합대회 등등을 자주 한다는 방송이 나오던데

물론 홍보용 과장이긴 하겠지만 우린 다른나라 군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혹시 육지멀미 해보신분? ㅎㅎㅎ)

이번 출동만 끝나면, 한달만 고생하면, 부두에 내리면 부두 PX에서 뭐 사먹을 수도 있고.. 한달만에 부모님께 전화도 드릴 수 있다.
이번 출동만 끝나면 이미 3달 전에 100일지난 신병도 100일휴가를 갈 수 있다.
이번 출동만 끝나면 한달뒤면 전역할 우리고참 전역 파티도 해줄 수 있다.
이번 출동만 끝나면 부두에 잔뜩 쌓여있을.. 후배/친구들이 보낸 편지도 받을 수 있다.
이번 출동만 끝나면...... 

죽은 장병들은 나 였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주변의 건장한 남자분들 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배 격실은 한번 잠그면 물이 전혀 새들어오지 않는데, 죽을때까지 깜깜한 해저에서 온갖 공포에 시달리며 처참히 죽어갔을 후배들을 애도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그리고 제발 불쌍한 젊은이들의 죽음을 개인의, 단체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으로 악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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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0/04/30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이 아픕니다...

  2. 명복을 빕니다 2010/04/30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3. 태안에사시는 주민들은요? 2010/05/04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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